허리 통증으로 휠체어를 타고 오신 할머니가 병원에 입원해 수술 등의 치료를 받고 걸어서 퇴원할 때 “아이구 고맙소. 의사 양반. 내 우리 마을에 가면 병원 선전 많이 하리다”라며 인사를 하고 가신다. 그 순간 나는 “할머니 잘 나아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손을 꼭 잡으며 이 말씀을 드린다. 그 때 할머니는 이 의사가 왜 고맙다고 하는지 의아해하신다.
환자 입장에서 보면 통증이라는 고통을 덜어 드렸기에 의사선생님을 향한 고마운 마음에 인사를 전하셨을 것이다. 그런데 조금만 더 생각해보면 의사는 환자가 바로 존재의 이유이다. 신경외과 전문의가 된 후 군의관으로 입대하기 전 은사님께 인사를 갔던 적이 있다. 은사님은 “김 선생, 앞으로 많은 환자를 수술하고 치료하겠지만 환자가 고맙다고 인사하면 오히려 잘 나아주셔서 고맙다고 꼭 인사를 전하세요”라고 하셨다. 은사님은 “그 환자는 잘 나아서 좋겠지만 꼭 당신에게 치료를 받고 호전이 됐기에 그 환자의 입장에서는 당신이 이 세상에서 제일 잘하는 의사가 된 것이요. 그리고 그 환자 주위에 같은 질병이 있는 사람이 있으면 꼭 당신을 추천해줄 테니 얼마나 고마운 사람입니까. 환자가 고맙다고 하기 전 당신이 고맙다고 해야 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소.” 맞는 말씀이다. 환자를 대할 때 가족처럼 대하라는 말씀을 새기며 진료에 임하고 있다.
가끔 환자분들께 “수술이 최선의 치료방법입니다”라고 말씀드리면 반대로 되물으신다. “선생님의 어머니라면 이 수술을 하시겠습니까?” 그때 저는 최선의 치료방법이라고 생각하기에 “예. 제 어머니라면 제가 손을 잡고 수술실로 갈 것입니다”라고 말한다. 실제로 나의 부모님의 척추수술을 직접 집도했다. 환자와 의사의 강한 유대감, 친밀감을 뜻하는 불어는 라뽀(rapport)라 한다. 환자와의 라뽀가 잘 형성돼 있다면 일반적으로 환자는 예후가 좋은 경우가 많다. 의사에 대한 믿음이 없다면 아무리 작은 잔여 증상도 큰 합병증으로 생각되고 환자를 오래 따라다닌다. 요즘은 인터넷을 통한 의료지식들이 넘쳐나 환자와의 면담 도중 예상하지 못했던 질문을 많이 받는다. 더 이상 환자 앞에서 권위적인 의사는 통하지 않는다. 거짓은 드러나게 마련이다.
옛날에는 타 병원에서 수술하고도 증상의 호전이 없어 수술 전후의 검사 결과를 가지고 와 수술이 어떠했느냐고 물을 때가 가장 난감했다. 하지만 지금은 환자가 충분히 이해할 수 있게 설명을 드린다. 그리고 이전의 결과가 어떠했던 “앞으로 건강하게 잘 지내실 수 있게 하겠습니다. 안 좋았던 예전 기억은 잊으세요”라고 부탁을 드린다.
의사를 만들어 주신 분은 은사님이시지만 좋은 의사, 실력 있는 의사를 만들어 주신 분은 환자분들이기에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진료에 임하려 한다. 그동안 수많은 환자를 수술하고 치료를 하면서 수없이 들었던 이야기, 그리고 앞으로 계속할 이야기 “잘 나아주셔서 고맙습니다”를 오늘도 전해본다. (창원 the큰병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