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진료실을 찾은 한 할머니가 기침을 콜록콜록하면서 9월 말에 독감 예방주사를 맞았는데도 몇 달도 안 돼 감기에 걸렸다며 ‘독감 예방주사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다’고 불평했다.
●2.노모와 부인, 아들과 딸을 모두 데리고 진료실에 온 아저씨 한 분이 ‘작년에 독감 예방주사를 맞고 나서 겨울에 감기 한 번 안 걸리고 잘 지냈다’며 식구 모두 독감 예방주사를 맞겠다고 한다.
이런 대조적인 상황이 발생하는 이유는 근본적으로 감기와 독감, 독감 예방주사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독감은 일반적인 감기와는 다른 질병이다. 독감을 일으키는 바이러스는 보통의 감기 바이러스들과는 다른 ‘인플루엔자’라는 특별한 바이러스이다. 독감예방주사는 이 인플루엔자의 일부 성분을 추출하여 만든 주사약으로, 접종 후에 인플루엔자에 대한 면역력을 얻게 만드는 작용을 한다.
따라서 종류가 전혀 다른 일반 감기 바이러스에 대한 예방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 독감 예방주사를 맞고서 일반 감기에 안 걸리기를 바라는 것은, 마치 소아마비 예방접종을 하고 홍역에 안 걸리기를 바라는 것과 전혀 다를 것이 없다.
그러면 왜 인플루엔자(독감)에 대해서만 예방주사를 권할까? 그것은 이 ‘독감’이라는 병이 보통의 감기와는 달리 ‘일부 사람들’에서는 치명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런 ‘일부 사람들’에게는 독감예방주사를 우선적으로 권하는 것이다.
이런 ‘일부 사람들’에 속하는 분들은 60세 이상의 모든 남녀, 면역이 억제되어 있는 환자, 당뇨병, 신부전, 만성폐질환, 만성심장질환, 만성간질환, 만성혈액종양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 집단시설 수용 환자, 임산부 등이다. 국내에서는 2011년부터 만 50세 이상 인구와 6개월에서 59개월 사이의 유아도 우선접종대상에 추가됐다.
아울러 이런 사람들과 접촉이 많을 것으로 예상되는 의료인, 임산부나 노인 혹은 영아를 돌보는 직업에 종사하는 분들은 전염예방의 목적에서 예방접종을 받아야 한다.
그런데 매년 독감 예방주사를 맞아야 하는 이유는 뭘까? 그것은 종류가 많은 독감 바이러스 중에 매년 겨울에 서로 다른 종류의 독감 바이러스들이 기승을 부리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가 매년 맞는 독감예방백신은 세계보건기구(WHO)가 올해에는 어떤 종류가 유행할지를 면밀히 검토해보고 잘 예측해서 만드는 매년 새로운 백신이다.
따라서 아주 우연히 작년과 올해 같은 종류의 독감바이러스가 유행하지 않는 이상 작년 예방주사를 올해 맞거나 하는 것은 도움이 될 수가 없다.
이제 앞에서 말씀하신 할머니와 아저씨의 말씀이 두 분 다 틀렸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독감 아닌 감기는 어떻게 예방할 것인가? 그 방법은 모두들 알다시피 평소에 건강을 잘 유지해 저항력을 키워 두고, 감기가 유행할 때 되도록 많은 사람이 모이는 장소를 피하며, 귀가 후에 손을 잘 씻고 양치질을 하는 것이다.
(창원 the큰병원 내과 과장)